금 지 된 장 난 , 쓸 모 없 는 것 들 과 의 로 망 스

이수영

금지된 장난, 쓸모없는 것들과의 로망스(이수영, 2020)

도를 아십니까?
 

쓸모없는 것들, 소용없는 것들, 빛바랜 것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이미 늦어 버린 것들,
잊힌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소용없고 잊힌 것들을 조우하는 놀라운 도력을 이 여행에서 얻게 되실 겁니다.
쓸모없는 것들을 만나는 게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이 완벽히 무용한 몸짓, 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욕망이  예술의 배후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유용함의 감옥에서 당신을 구하겠습니다.

 

“쓸모없는 없는 것들, 소용없는 것들, 빛바랜 것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이미 늦어버린 것들, 잊힌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완벽히 무용한 몸짓,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욕망이 예술의 배후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유용함의 감옥에서 당신을 구하겠습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쓸모없는 짓을 같이 해 보자며 세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때는 12월, 벌려놨던 일도 거둬드리는 때였고, 몹시 추웠고, 세계를 휩쓰는 역병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죄가 되는 때였다. 쓸모없는 일을 하기에는 호기였다.
무용한 것을 해보겠다는 욕망이 시민참여 워크숍의 주제가 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공공미술, 커뮤니티 아트, 시민참여 워크숍. 나는 몇 차례 이러한 작업을 하면서 항상 유용함에 시달렸다. 착하고 쓸모 있는 작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만나는 시민들에게 유용해야 하고, 작업의 효과는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고 수긍할만한 유익한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흔히 공공미술은 소수자 문제를 다룬다. 달동네, 외로운 노인, 차별받는 이주자, 빛바랜 동네, 위기의 마을. 소외된 여성, 취약계층 어린이. 소재에는 이미 사회가 정해 놓은 답이 들어있어 작업의 결과는 ‘새마을 운동’이 되곤 했다. 항상 성과를 위해 일해야 하는 지친 사회가 일상의 ‘바깥’을 보여 달라고 예술에게만 허락한 소중한 무용성. 나는 그것을 원했다. 낯설고 괴이한 것들을 일구는 일은 고되다. 그래서 예술에게 실패도 허락해준다면 용기를 내보려 했다.

금지된 장난, 쓸모없는 것들과의 로망스(이수영, 2020)

 

실패에 대한 고된 용기는 다음과 같았다. 워크숍 첫날, 우리는 각자의 사주를 봤다. 무토(戊土), 임수(壬水), 을목(乙木), 병화(丙火) 우리 넷은 워크숍 기간 동안 남가좌동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같은 기운을 가진 것들을 찾아 다녔다. 동기상응(同氣相應). 같은 기운은 서로 응한다. 사주를 본 것은 정해진 운명과 성향을 믿어서가 아니라 기(氣)로만 치자면 인간이나 비인간이나 계급장 떼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며, 새로운 눈으로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임수(壬水)는 홍제천 얼음물에 갇힌 돌덩이 두 개를 찾아 물 속 돌을 둘러 결계를 치고 돌에게 말을 걸어 답을 듣는 퍼포먼스를 했다. 을목(乙 木)은 천변에 잎이 다 떨어져 드러난 가지를 벌린 나무들을 만난 후 홍제천 뒷산에서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으고 쌓았다. 무토(戊土)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된 커다란 나뭇잎들을 만난 뒤 뒷산에서 땅이 요구하는 대로 발을 무겁게 끌며 걸었다. 병화(丙火)는 골목 공사장 펜스에 붙어 있는, 망령된 교회를 훈계하며 교회의 참다운 정신을 살리자는 뜨거운 전단지를 만나 헤비메탈 반주에 맞춰 격정적인 돌림노래를 불렀다.
고백하건데, 워크숍을 이끌었던 나는 참여자들이 재미없어 할까봐 걱정이었고, 의미 없음에 허탈해 할까봐 초조했다. 참여자들은 워크숍을 즐겼다. 내 눈엔 그랬다. 더 세게 뻘짓을 하자고 해도 됐을 것을, 살짝 후회한다. 그리고 이 후회가 용기를 준다.

금지된 장난, 쓸모없는 것들과의 로망스(이수영, 2020)

산 책 자

정보령, 김수진, 박소영, 배소은

인 솔 자

이수영
미술작가이다. 고사리, 습진, 눈, 전생, 활소리. 빨라지는 심장박동, 긴장, 짜증, 유곽, 100여년 전, 발, 넥타, 편견, 터부, 초원, 저 곳, 미안함, 물고기, 후쿠시마, 소나무, 망설임, 명왕성, 섬, 개천, 전단지, 거울, 그리고 알 수 없는 많은 것들과 함께 미술작업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