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책 : 불 러 냄 의 기 술

김현주

산책 준비 :
공공과 ‘거리 두기하며 예술 하는 기술’ 찾기

‘새로 산책’은 서대문구 가좌동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만나 ‘산책’을 매개로 예술 활동을 하는 시민참여 기반의 활동으로 기획되었다. 동네 주민과의 만남과 직접적인 소통이 중요한 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일반적으로 예술가와 주민간의 거리두기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당연히 요구되었던 반면, 이번 코로나 19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에서 공공公共미술은 본래의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이것을 실천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기존과는 다른 예술 활동의 방식을 고민해야 했다. 이런 지점에서 한 개의 채널로 주민들을 만나기보다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일시적 연대를 이루어 팬데믹 상황에서의 주민참여 예술 활동을 함께 고민하고, 지역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여 관점을 확장해 낼 것을 궁리하게 되었다. 이에 ‘산책’을 매개로한 예술 활동을 세 가지 프로젝트로 나누어 시도하게 되었으며 산책 인솔자로 본인을 비롯해 조광희, 이수영, 권은비 작가가 함께 했다.

권은비, 이수영은 지역 내 작은 거점 공간에서 주민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실제로 가좌동에 있는 물리적 장소들을 산책함으로써 예술 활동이 이루어졌다면, 본인 김현주와 조광희는 팀을 이루어 주민들의 일터나 거주지를 직접 방문하여 자기 삶과 밀접한 내부 공간 및 내면을 산책하는 일대일 인터뷰 기반의 예술 활동을 진행 하였다.

마을에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익숙한 자기 삶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예술 ‘놀이’이며, 같은 지역에 살지만 흩어져 각자의 삶들을 사는 이웃들이 예술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일종의 ‘잔치’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 그 자체를 향유하는 감상자가 되기도 하고 또는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예술 활동의 주체가 될 수도 있으며, 서로 모르고 지내던 이웃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나와 이웃, ‘우리’가 요구하는 좀 더 나은 삶의 변화를 예술을 통해 모색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지속과 한 겨울 한파 그리고 지역 내 모임을 지지해 주기로 했던 거점 공간의 불안정성은 지역민을 만나야 가능한 예술 활동 자체를 어렵게 했다.

또한 전국민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인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술을 명목으로 모임을 부추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민 또한 큰 부담을 갖지 않으며 사회적 약속을 일탈하지 않고 이끌어낼 수 있는 주제와 방법들을 ‘새로움’, ‘산책’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부터 풀어내고자 했다.
예술 활동의 형식을 ‘온라인’ 중심의 비대면 활동으로도 고려해 봤으나, 비대면 방식으로 주민들과의 만남을 확정할 경우 분명히 소외되는 계층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산책’이라는 프로젝트의 중심어를 의미론적으로만 사용하기보다 소수의 참여자로 운영될 지라도 지역을 ‘걷는다’라는 실제적 몸쓰기를 통해 확장해낼 수 있는 감각들에 중심을 두고자 했다. 

산책 하기 : ‘불러냄의 기술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들이 안내한 산책의 시간들을 더듬어 소개하면,먼저 < 도시 서사 프로젝트 - 사는 산책 >의 인솔자 권은비는 지역의 50할이 아파트 단지화 되면서 신구로 나뉘게 된 가좌동의 불편한 도시의 풍경에 주목했다. 이에 그녀가 선택한 산책의 장소는 주민들에게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인근 아파트 주변과 거리, 도시 속 생활 공간들이었다. 산책하는 동안 참여자들은 각자의 핸드폰을 들고 사진 찍기 활동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특별한 지시 없이 참여자는 스스로 내키는 대로 이끌리는 풍경들을 카메라 안에 담았다. 기록된 장소의 풍경은 이 후, 촬영한 주민 각자의 도시, 삶 속 경험과 기억으로 연결되어 언어화 되었고 책으로써 공유되는 활동이 진행됐다.

 

이수영은 < 금지된 장난, 쓸모없는 것들과의 로망스 >를 통해 도시의 거대한 풍경 속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지극히 소외된 사물들에 주목한다. 산책하며 발견된 무용한 것들과의 뻘짓-예술하기를 안내한 이수영은 몸의 감각이라는 보이지 않는 돋보기를 들고 인근 남가좌동을 돌아다니며 물이 흐르고 낙엽이 뒹구는 홍제천과 산을 주된 산책의 장소로 삼았다. 자신과 같은 기운을 가진 것들을 마침내 찾은 산책자들 임수(壬水), 을목(乙木), 무토(戊土), 병화(丙火)는 돌, 낙엽, 전단지와 놀아봄으로써 몸에 고착된 인간이라는 딱지를 잠시 떼어내고 비인간과의 소통을 만끽했다.

본인 김현주와 조광희는 < 질문을 산책하다 >를 통해 코로나로 한가해진 마을 가게들을 방문하여 일대일 방식으로 이뤄지는 ‘질문’과 ‘대화’를 예술 활동의 주된 미디어로 삼아 주민 각자의 노동의 공간이자 삶의 공간에서 잠시 망각된 것들을 불러내는 내면 산책이 되길 안내 했다. 코로나라는 재난 상황이 아니었다면 한참 일해야 하는 시간에 안면부지의 사람과 쉬운 듯 어려운 듯 정답 없는 질문에 고민하며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마을 가게 (옷 수선집, 부동산중개업소, 떡집, 사진스튜디오, 술집, 안경점, 빵집, 도서관, 까페 등)는 함부로 상상할 수 없는 누군가의 소중한 ‘세계’였고 삶이라는 유한된 시간을 버티게 하는 힘으로 느껴졌다. 주민의 느린 걸음의 산책과 작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포착한 익숙한 장소에서의 사물 혹은 풍경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어떤 결정체로 남겨진 선택의 풍경이었다.

‘공공’ 혹은 ‘우리’라는 무명 속에서 대체 ‘우리’는 누구일까를 질문했던 < 질문을 산책하다 >는 특정한 이슈를 거론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는 한 달이 멀다하고 치솟는 아파트 값에 불안해하며 정주할 수 없는 삶을 토로했고, 또 석 달째 문을 닫은 채 늘어나는 빚에 마음이 먹먹함에도 쉬지 않고 가게 안에 물건들을 재정비하는 술집 사장님의 담담한 삶의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우리’라는 공공, 지역 주민들의 삶의 풍경을 산책하면서 예술을 통해 주민들이 불러낸 것은 무엇일까? 예술가 혹은 주민들, 양쪽 누구에게도 기울어지지 않는 평등한 산책이 되길 바랬는데 이번에도 주민들에게 지고 만 걸까? 특별할 것 없는 익숙한 삶의 자리에서 진행된 ‘불러냄’의 놀이들은 주민들에게 어땠을까? 따뜻한 봄이 되어 다시 가좌동을 걷는 어느 날 나는 주민들의 바램처럼 머리수를 세지 않고 둘러 앉아 맥주로 목을 축이며 이런 저런 사는 얘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산책 보기 : ‘스펙터클 없는 잔치’ 벌이기

5인 이상 집합 금지기간이 연장되고 매서운 한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시가 진행되었다. 전시는 주민들과의 관계를 여전히 지속하는 프로젝트의 여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마을 내 주민들이 직접 대면하여 만날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시는 보이지 않는 이웃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였다. 이런 지점에서 < 새로 산책 >전시는 이웃의 삶을 잠시나마 사색하여 나와 연결해보는 ‘산책’의 연장선이라 하겠다.

주민들이 허락한 말의 풍경과 일터에서 포착된 이미지, 그들이 발견한 사물들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나와 이웃한 존재들의 시간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전시를 통해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전시는 여전히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주민들과 계획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과업이 바로 주민들과 수다를 나누는 일이었다. 그 때마다 나는 가좌동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장황하게 소개하기를 반복했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했다. 대화의 말미에는 ‘가좌동에서 제가 꼭 만나야 하는, 또 저를 만나 주실 수 있는 분은 누구일까요? 소개 좀 해주세요.’, ‘공공미술 전시는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해야 제대로 잘 할 수 있거든요. 프로젝트 전시를 하려면 공간이 필요한데 어디서 하는 게 좋을까요?’ 라는 도움을 청하는 질문을 빼먹지 않았다. 나 자신 스스로가 참 막무가내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이런 질문에 수긍하시는 분들이 계셨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내가 만난 가좌동 주민분들은 자신의 가게를 전시 공간으로 공유하는 것에 협조적이셨다. < 새로 산책 > 전시를 진행하게 된 ‘하늘 꿈 작은 도서관’ 또한 인터뷰를 진행했던 이웃한 분에게 소개를 받았고, 관장님은 아무 조건 없이 공간을 내주셨다. 결국 주민분들이 인터뷰를 지속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주신 셈이고, 전시 또한 주민분들 덕분에 지역 내 공간에서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가좌동 몇 몇 주민들은 몇 해 전부터 이웃 간의 연대를 촉진하고 문화예술 향유를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플리마켓과 같은 행사들을 시도해왔다. 이러한 시점에서 진행된 공공예술사업은 주민들에게 충분히 긍정적인 사건이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며 반면에 구의 행정이 공동체의 문화적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새로 산책 > 프로젝트는 그 과정과 전시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연결고리가 큰 힘이 된 예술 활동이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스펙터클 없는 조용한 내면의 잔치를 벌이는 일이었다라고 편들어 얘기하고 싶다.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진 ‘산책’이라는 예술이 내 삶의 일상과 내부로스미는 여행이 되었길, 보이지 않는 이웃의 삶을 교감하는 자리가 되었길 바라며 프로젝트를 지지해준 기획단분들, 함께한 예술가들과 남가좌동 주민분들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김현주

지금 만나는 사람, 내일 만나는 사람, 일 년 후 만날 누군가가 되기 위해 ‘아무도 아닌 나’가 되려고 애쓴다. 누군가가 되고 또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 질문을 만들고 같이 산책을 한다. 예술이 보이지 않는 ‘우리’를 위한 것, 그 보이지 않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 믿으며 미디어와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