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림 그 리 는 사 진 관 에 서 사 람 을 만 나 다

새로산책 프로젝트 참여자 리뷰_최차랑(그림그리는 사진관 대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터를 잡고 산지 벌써 6년여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인생의 몇 가지 변화들이 생겼는데, 첫 번째는 결혼을 하여 한 가정에서 남편이자 아빠가 된 것, 두 번째는 남가좌동 백련시장 길에 ‘그림그리는사진관’을 열어 우리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한 사진과 그림으로 담는 행복한 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은 이웃사촌 같은 형, 동생 등 동네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남가좌동은 사랑하는 가족과 일, 친구를 만들어 준 나에게 애정 깊은 동네가 되었다. 이 동네가 더 좋아진 소소한 이유가 몇 가지 더 있다. 우리 동네는 신구新舊가 공존하는 동네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오랜 백련시장 골목에는 맛 좋은 식당들도 많고, 잔잔한 멋과 향기 짙은 커피숍, 술집들도 많다. 오래된 골목 주택가를 산책하다보면, 8-90년대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새로 들어선 아파트가 있어 유모차 끌고 가는 젊은 부부들과 시끌벅적 아이들도 볼 수 있다.
사진관 옆 복권방 앞에서는 삼삼오오 이야기 나누시는 어르신들이 거리의 정겨움을 더하고, 명지대 대학가 학생들은 거리에 젊음을 물들이기도 한다.
남가좌동 거리는 언제나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라 더 좋다. 최근에는 마을 전시와 문화행사, 소규모 공방들이 주최하는 플리마켓 등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도 점차 늘고 있다. 이번 아르코공공예술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마을가게미술관 – 새로산책展’은 예술을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주민들이 생활하는 일상의 공간(동네상점, 거리, 도서관)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김현주, 조광희 작가님의 제안을 통해 < 새로산책展 >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작품 활동에 손을 놓은 지 10여년이 되어 어떤 맥락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한 끝에, ‘그림그리는사진관’을 통해 만나 온 남가좌동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과 느낌들을 표현해보기로 하였다. 이번 작품은 ‘무명인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업을 통해 마주한 주변인(무명 존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존재가치 인식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 중에는 지갑 속 고이 간직해 온 젊은 어머니의 흑백사진을 가져와 복원을 의뢰하시는 할아버지도 있었고, 삶의 마지막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시는 어르신들, 자녀들의 성장기록 사진을 찍으러 오는 젊은 부부와 아이들까지... 세상 다양한 존재들의 삶과 죽음 사이 삶의 단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나에게는) 무의미한 존재들이었을 텐데, 사진에 남겨진 그들은 나에게 비로소 유의미한 존재가 되었다. 이번 영상작품에서는 스무 명의 초상사진 이미지를 뽑아 콜라지 방식으로 ‘찢고 그리는’ 반복된 시청각 이미지를 만들었다. 무명인 존재의 삶을 더듬고 어루만지며 존재의 소멸과 생성 -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다양한 시간대에 기록된 인물들의 중첩된 초상을 만들고자 하였다.짧은 시간에 만든 작품이라 아쉬운 점들은 많았지만, 10여년 만에 예술가로서의 삶을 다시 그리고,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열린 < 새로산책展 >을 보고난 느낌은, 코로나19 여파로 사람간의 소통이 줄고, 심리적으로 위축돼있는 시기, 내 주변, 우리 동네 사람들의 안녕을 확인하고, ‘잘 살고 있지? 난 잘 살고 있어. 요즘 힘들지? 잘 이겨낼 거야.’라는 위로와 응원을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또 이번 전시를 통해 동네주민으로서 우리 동네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 것 같다. 더불어 이번 ‘마을가게미술관’ 프로젝트를 계기로,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향유욕구를 기반으로 한 보다 풍성한 문화예술 활동이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끝으로, 본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아이공’ 사업관계자 분들과 작가님들께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최차랑

최차랑은 남가좌동에서 '그림 그리는 사진관'을 운영하며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과 사진으로 담고 있다. 사진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 속 공동의 가치를 발견해, 다원적 예술 활동을 매개로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일을 도모하고 있다.